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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과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 그리고 놀이문화를 찾아서

서울의푸른하늘 2013. 2. 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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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과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 그리고 놀이문화를 찾아서

 

                                                                                                                                                                                            글 구성: 최 부 암

 

 

   우리 조상들은 명절을 맞아 어떻게 지냈으며, 우리의 명절문화와 놀이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계승하여 왔는지 옛날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오늘날 문명은 기계화 디지털화 되어 최근에는 그 발전 속도를 적응하기 쉽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옛것은 잃어가고 감성도 황폐되어가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옛 것을 기억하고 재현하여 우리의 문화를 즐기며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 또한 이 시대 우리기의 사명이고 의무기도 하다.

   잊혀져가고 소멸 되어가는 것을 아쉬워만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하지만 세대가 변하고 사회가 디지털화됨에 따라 설날이 주는 의미가 점점 퇴색해가며 그 의미도 잃어가고 있다.

    2013년 새해 설날을 맞으며, 우리의 부모들은 어떤 놀이를 하며 설을 맞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라져 가는 우리민속의 고유 놀이를 올 설에는 가족과 즐겨 보시길 권한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 맞아 설날은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설날은 해()의 한 간지가 끝나고 새 간지가 시작되는 날로,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등의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설날의 아침은 조상께 차례를 지내며 일 년 운수를 기원했다.

   떡국을 끊여 나이 수만큼 먹어야 한 살 나이를 먹는다하여 일 년의 첫 시작을 마음껏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풍요를 기원했다.

   세배를 통하여 집안의 어른께 큰 절로 만수무강을 비는 미덕으로 한 해를 시작하였고, 어른은 손아래 사람들에게 격려와 건강의 덕담으로 격려하였다.

   설빔으로 아이들은 새로 지은 색동바지 저고리를 차려 입고 세배의 답으로 문안비를 받았다. 이 세뱃돈은 문안비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문안비는 조선시대에 남존여비의 관습에 얽매였던 관계로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는 부녀자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외출이 금기되어 설날이돌아와도 세배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었기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부인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초에 이 문안비들이 오면 답례로 돈이나 기타 물품을 선물로 주고는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 널리 행해지는 세뱃돈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설그림을 주고 받는 것은 조선 시대에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궐에서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그림이란다.

   설날이면 도화서(圖畵署)에서 성수선녀(星壽仙女)와 직일신장(直日神將) 등을 그려서 왕에게 바치고,

   각 관아에서는 선물로 이런 그림을 교환하였던 것이,

   오늘날 새해 축하 인사의 글과 그림 그리고 덕담을 적어 보내는 연하장이 설그림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복조리 걸기는 대나무나 싸리가지의 속대를 엮어 만들어 쌀의 돌을 골라내는 도구이나. 그 해의 복을 취한다고 하여 '복 들어오는 조리'라는 뜻에서 복조리라 부른다.

   섣달 그믐날 자정부터 정월 초하룻날 아침 사이에 마을 청년들이 복 많이 받으라고 소리치며 복조리를 집 마당에 던져놓고 복조리 채를 받았다 한다.

   야광 귀쫓기는 정월 초하룻날 밤이면 야광이라는 귀신이 민가에 내려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간다고 한다.

   신을 잃은 임자는 1년간 불길하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신을 방이나 다락에 넣어두고 잠을 잔다.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을 일찍 잠그며, 때로는 금줄을 쳐서 쫓고 딱총으로 큰소리를 내어 쫓는 곳도 있었다. 체를 마루벽이나 뜰에 걸어두어 예방하기도 한다.

   체를 걸어두는 행위는 야광귀는 체의 구멍을 보고 체가 많은 눈을 가진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여 집안에 들어가지 못하며, 눈이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하여 신을 훔칠 생각도 잊고 체구멍을 일일이 세게 된다.

   어디까지 세었는지 잊어버리고 다시 세는 일을 반복하다가 날이 새고 새벽에 닭이 울면 하늘로 도망간다고 한다.

   청참은 새해의 첫 새벽에 사람 소리나 짐승 소리 또는 처음 듣는 소리로 그 해의 길흉과 운수를 점을 쳤다고 한다.

   아직도 널리 알려져 있는 놀이는 그나마 다행이나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 몇 가지를 소개한다.

 

  정월 대보름날을 명절로 맞았다는 기록이 삼국시대부터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전부터 명절로 꼽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소지왕(炤知王 479~500)이 천천정에 놀러 나갔다가 쥐와 까마귀, 돼지를 만난 후 불길한 일이 있었으므로 이 때 부터 매해 정월 첫 돼지날’, ‘쥐날’, ‘말날에는 모든 일에 조심하여 함부로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정월 보름날은 까마귀의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약밥의 유래에 대하여 말하는 동시에 대보름 명절이 삼국시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곡으로 기장, , , 보리, 벼를 적고 있으며, 지방에 따라서는 벼 대신 조 또는 밀, 콩 대신 녹두를 꼽기도 하였다.

   또한 콩나물, 박나물 그리고, 말린 버섯과 무우 등, 저장해 둔 묵은 나물들을 먹었는데, 이 날에 국을 끓여 먹으면 그 해 여름에는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였다.

   국수는 작은 보름날 점심에 별식으로 먹었는데, 국수처럼 오래오래 살 것을 염원한 데서 명길이 국수라고 부른다.

   대보름은 모두 맛있는 명절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노는데, 개만은 굶는 날로 되어 있다.

   동국세시기에 이 날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개에게 먹이를 주면 앞으로 파리가 많이 끼고 마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담에 굶는 것을 비유해서 정월 대보름날 개 같다는 말이 있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흔히 굶으며 사는 것을 개 보름 쇠듯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또 더위팔기, 달맞이. 줄다리기, 석전(石戰) 등을 한다. 보름은 새해 농사의 시점이라 하여 농사일과 관계있는 일들을 한다. 

 

 설날과 정월대보름 놀이

 

   윷놀이는 남녀노소가 함께 하는 가장 보편적인 놀이인 윷놀이는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 사이에 한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이 함께 모여 즐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놀이이다.

   둥근 나무토막이나 검은콩 두개를 반으로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들고 이것을 던져서 엎어지고 잦혀지는 모양을 셈하여 말을 쓰는 놀이로서, 보통 많이 사용하는 장작윷은 길이 15~20센티미터, 직경3~5센티미터 정도의 윤목 두 개를 각각 반으로 쪼개어 네 개비를 만든 것이다.

   아직도 설날이면 가장 대중적인 전승놀이로 즐긴다. 윷놀이의 기원지는 인도이며,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그리고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다고 한다.

   윷놀이를 통해 예전에는 농사의 흉·풍년이나 전쟁의 승패 따위를 점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윷놀이를 개량하여, `자유걸' `뒷도' 등 다양한 변칙규정을 가미하여 그 흥미를 높여 놀이를 한다.

 

   칠교놀이는 정사각형을 일곱 조각으로 나누어 인물 동물식물 건축물 지형 글자 등 온갖 사물을 만들며 노는 놀이다.

   다른 놀이보다 많은 사고력이 필요하며 특히 어린아이들 두뇌발달을 촉진시킨다.

   치매예방을 위한 어른들 뇌운동에도 좋다.

   중국에서 처음 시작된 칠교놀이는 지혜판으로 불렸으며, 탱그램이란 이름으로 세계에 퍼졌다.

   칠교판은 크고 작은 삼각형 다섯 개, 정사각형 하나와 평행사변형 하나로 되어 있다.

   이를 적절하게 배치해 칠교도 속 그림을 만드는 것. 칠교도에는 무려 512개 형상이 있다.

   주변에서 널리 쓰는 생활용품부터 사물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 같은 추상적인 것까지 형상화했다.

   선인의 섬세한 손끝과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칠교판(7개의 교묘한 판) 또는 유객판(留客板)(손님을 머무르게 하는 판)이라고 한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중국으로 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청나라 시대인 1803년에 처음으로 이 놀이에 관한 책이 출간 되었으며 유럽쪽으로도 전래되어 이와 비슷한 놀이(Tangram )가 많이 생겨났다.

   나폴레옹, 특히 에드가 앨런 포우는 광적으로 이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고누놀이는 별 다른 놀잇감이 없던 시절, 아이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놀이였다.

   할아버지는 바둑을, 아버지는 장기를, 아이는 고누를 둔다.

   오목에서처럼 제 말이 나란히 셋이 되면 상대 것을 하나씩 떼내는 놀이다.

   단 들어낸 곳엔 다시 말을 놓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말로 다 채워지면 이젠 빈 곳으로 움직여 말을 셋으로 정렬시키면서 다시 상대 것을 따먹는 놀이다.

   고누에는 그림에 따라 우물고누, 줄고누, 호박고누, 자동차고누 등이 있는데, 여기에선 호박고누를 소개한다

 

   제기차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놀이. 발을 한 번씩 딛고 차는 `맨제기'제기를 차는 발을 바닥에 딛지 않고 계속 차는 `헐렁이'양발을 바꿔가며 차는 `쌍발차기'(으지자지)가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차다 실수하는 이에게 벌칙을 주는 것도 재미있다.

 

   투호놀이는 고려 때부터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손님 접대용으로 행해져 왔던 것으로 마당 한복판에 항아리를 놓고 편을 갈라 화살을 던져 넣던 것이 본래의 놀이방법.

   항아리 대신 원통형 기나 빈 화병을 놓아두고 화살 대신 동전이나 조약돌. 구슬 등을 던져넣으면 된다.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 이긴다. 유래

   본래는 중국 당나라에서 성행되었던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졌던 놀이이다.

   양반이나 귀족들의 놀이여서 놀이할 때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오늘에 이르러 우리 놀이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고궁에서나 명절 행사 때 단골메뉴로 등장하여 누구나 쉽게 해볼 수 있는 놀이가 되었다.

 

   널뛰기는 큰 명절에 성행한 여자들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조선조 양반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해 왔기 때문에 대문 밖 출입이 제한되어 담장 밖의 세상을 볼기회가 없자 널뛰기로 담장 밖 세상을 보는 지혜로 널뛰기를 고안하여 명절날 세상 밖 풍경을 아낙들이 즐겼다고 한다.

   양반 계급사회에서 시작된 이 놀이는 서민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었고 널뛰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널뛰기는 널 양끝에 한 사람씩 올라와서 줄을 잡고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이 때 널 가운데 한 사람이 앉아 널을 널받침 위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장 높이 뛴 사람이 이기거나 힘껏 굴러 상대편을 떨어뜨리면 이기게 된다.

 

   팽이치기는 겨울에 사내아이들이 얼음판 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치기라고도 한다.

   팽이에는 아래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 만든 보통 팽이와 위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뿔팽이가 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리는데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후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는다.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설은 당나라 때 놀이가 시작되어 삼국시대 때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고마'라는 이름으로 성행, 발전하여 우리나라에 역으로 전해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놀이방법은 팽이 오래 돌리기(오래 도는 팽이가 이김),

   팽이 멀리 보내기(출발선에서 팽이를 한껏 쳐서 가장 멀리 나가 도는 팽이가 이김),

   팽이 쓰러뜨리기(팽이를 상대방의 팽이에 부딪치게 하여 쓰러뜨리면 이김).

 

   연날리기(-)는 한국의 민속놀이로, 연을 날리는 것이다.

   흔히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날리며, 액을 쫓는 주술적인 의미로 대보름에는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을 써 해질 무렵 연실을 끊어 멀리 날려 보낸다.

   즉 그해의 온갖 재앙을 연에 실어 날려 보내고 복을 맞아들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진덕여왕 즉위 1년에 대신 비담과 염종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므로 왕이 두려워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띄워 다시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볼 때 이 시기에는 이미 연이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또한 놀이로서의 도구뿐만 아니라 전쟁의 도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최영이 탐라의 목호(牧胡; 목축을 하는 몽고인)가 반란을 일으켜 이를 평정할 때 접근이 어렵자,

   큰 연을 많이 만들어 불을 달아 올려 평정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병사를 큰 연에다 매달아 적진을 공략했다고 전해진다.

 

   부럼깨기는 정월 대보름 아침 일찍 일어나 '부럼'이라고 하는 호두···땅콩·은행나무 등을 깨물면서,

   1년 내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종기)이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면 1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민속이다.

   이러한 민속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 등의 옛책을 보면 부럼의 유래를 엿볼 수 있다.

   부럼은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기도 하지만 노인네들은 이가 좋지 않으므로 몇 개만 깨문다.

   깨문 부럼은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한번에 깨문 부럼은 마당에 버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스럼이 나지 않는 것은 물론 치아도 튼튼해진다고 한다.

   옛날에는 먹을 것도 많지 않고 따라서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곧잘 부스럼이 나고 버짐이 피곤 하였다.

   그래서 호두나 땅콩 같은 영양가 높은 음식을 미리 먹여 피부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기도 하다.

 

   정월대보름과 오곡밥은 장수를 기원하는 음식의 하나로 신라시대 까치에게 감사하며 정월 대보름 제사상에 올리던 약밥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약밥에 사용되는 잣, , 대추 등의 귀한 재료를 구할 수 없었던 일반 평민들이 약밥 대신 쌀과 콩 등의 다섯 가지 곡식을 넣어 오곡밥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에 미리 지어서 아홉 가지 나물과 함께 보름 명절 음식으로 삼아왔다.

   특히 대보름날에는 다른 성을 가진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여 여러 집의 오곡밥을 서로 나누어 먹고,

   또 그날 하루 동안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하여 틈틈이 여러 번 나누어서 조금씩 먹기도 하였다.

 

   쥐불놀이는 쑥방망이에 불을 붙여 들고 논밭 둑의 마른 풀에 불을 놓아 모두 태운다.

   마을에 따라서는 아이들이 두 패로 갈라 불을 놓고 불의 세기를 겨루기도 한다.

   불을 놓는 이유는 쥐를 쫓아내고 마른 풀에 붙어 있는 해충의 알 등 모든 잡균들을 태워 없애며 새싹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또 쥐불로 한 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하는데 이 풍습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쥐불놀이는 정월대보름에 앞서 쥐날이 되면 으레 쥐불을 놓던 우리나라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

   쥐불은 논과 밭의 잡균(해충)을 태워 없애 주고, 쥐불놀이를 하면 1년 동안 무병, 무해하다고 믿는 풍습이기도 하다.

   이는 한 해 농사를 준비하고 새 출발을 다짐했던 조상의 슬기가 담겨 있는 놀이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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