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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누구인가...

서울의푸른하늘 2010. 2. 9. 18:14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前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助言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車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이 시대의 아버지란 누구인가..."

 

   외환 위기 파동으로 IMF차관을 도입하던 1999년 말 즈음 직장마다 감원의 칼바람으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우리시대의 아버지의 아픔을 쓴 A4용지 2매 분량의 글이 인터넷에서 떠돌던 작자미상의 “아버지란 누구인가” 는 동아일보 2002년 9월 13일자 19면에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진 글이다.

 

    “끝까지 못 읽었습니다. 눈물이 나서….” 이름이 ‘아빠’라는 한 독자는 이렇게 썼다.

    그는 “여기는 아침, 직장입니다”라는 단 한 줄로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을 표현했다.

    육중한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무전기에 대고 “여기는 백마고지!” 하고 외치는 것보다 더 긴박한 전장 분위기다.

    또 다른 한 아버지는 “대학생 딸의 책상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더니, 이걸 본 딸이 아빠 가슴에 머리를 묻고 펑펑 울더라”고 했다. 아버지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면서...

 

    무엇이 이 땅의 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모든 이들을 울게 하는가.

    피로와 일과 직장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라는 머리 셋 달린 용과 싸우는 아버지,

    손수 모범을 보이라는 속담에 남몰래 콤플렉스를 느끼는 아버지,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고 날마다 자책하는 그 아버지를….

    이 글에서 아버지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아버지를 둔 사람들은 여태껏 바위인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여린 모습을 발견하고 뒤늦게 가슴이 미어진다.

    갈수록 경쟁력만 강조해대는 글로벌 사회, 가족들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도 ‘부자 아빠’가 아닌 탓에 울 장소조차 없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우는 시대는 불우한 시대다.

    1996년 나온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는 외환위기가 터진 97년을 전후해 불어 닥친 명예퇴직 칼바람을 타고, 2000년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는 구조조정의 광풍을 타고 베스트셀러로 떠올랐고 전국을 ‘아버지 신드롬’에 몰아넣었다.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작자 미상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는 세계화의 미명 아래 돈과 능력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세상을 낮은 음성으로 비판한다.

   사람 사는 게 그게 다가 아니잖아.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여기 있잖아 하듯.

   우리의 아버지들은 지금 외로운 거다.

   가부장의 권위가 추락할 때마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아버지 신드롬이 불거진다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은 잠시 못들은 척하자.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슬에 스스로를 묶어, 힘들고 지쳐도 내색하지 않고 짐을 나눠지지도 못한 채 견뎌온 아버지가 아닌가.   

   겉으론 크나큰 느티나무여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고 있지만 그의 가슴은 이 순간에도 가을 겨울이다.

   오늘만큼은 따뜻한 미소로 그동안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와 위로를 전해 보자.

   아버지가 있기에 우리가 이만큼 된 것 이므로.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어버이 날을 앞두고 이 시대의 아버지를 위한 생각해 보자.

 

 

 

발췌[동아일보 2002-09-13 18:27]

[횡설수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