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이유

봉평 메밀축제를 가다.

서울의푸른하늘 2012. 9. 10. 15:44

봉평에 효석문화제가 열렸다.
메밀꽃이 가장 흐드러지게 핀 계절에 문화제를 개최하여 

메밀과 관련 된 먹거리와 생활용품 판매와

그리고 이효석의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의 소재가 된 봉평장과 봉평 일대를 테마로 하였다.

아내가 더 가고 싶어하기에 인터넷으로 충분히 자료를 수집하고,

효석문화제 개막 이튿날인 주말을 오전 출발을 하였다.

아내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걱정으로 가면서도 염려를 하였다.

비가 서쪽 부터 시작해 강원도와 동해안은 밤 늦게 비가 온다하였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안심을 시켰지만 아내는 염려가 되는 모양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절대 오늘 비를 맞지 않은 거라고....

이효석 생가와 메밀꽃이 세상에 소금을 뿌려 놓은듯이

온세상이 하얀 메밀꽃 속으로 가을 여행 추억을 만들었다.

 

 

봉평에 다다르자 비가 한 줄기 뿌리고 지나 갔다.

봉평 읍으로 들어가는 어귀부터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있다.

 

문화마을 입구 진입로가 아예 차량으로 길이 통제되어 입구가 막혔다. 

봉평마을금고 앞에 차량을 주차하고 마을로 들어가니 온통 먹거리장터로 문화제와 거리가 먼 야시장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문화마을 초입에 이효석 소설속의 메밀 꽃 필무렵에 등장하는 충주집터가 표지석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공원입구 양쪽으로 먹거리와 야시장판으로 인산인해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비교적 문화마을 답게 곳곳이 걸맞는 테마로 볼거리 즐거움을 준다.

 

거리도 깨끗하고 온통 소금을 뿌려놓은 듯 메밀꽃으로 세상이 하얗다. 

 

이효석 생가터와 문화관으로 향한 거리는 온통 인파로 도로를 메워 차량을 모투 통제하였다.

 

너른 돌판에 찹쌀을 쪄 떡메를 친다. 인절미 먹고 싶었으나, 볼거리는 되어도 주변이 불결하여 먹고픈 충동은 느끼질 않았다.

 

가산공원의 넓은 광장은 온통 먹거리로 소란스럽다.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한 빈 속이라 몹시 시장하여, 소설 속의 봉평장에 등장할 법한 국밥을 아내와 함께 먹었다.

 역시 뜨네기들의 야시장판의 7.000원하는 식사는 역시 간이 짜고 내용물도 성의없는 엉터리국밥이었다. 

14.000원이 너무 아까웠다.

 

식사를 대충마치고 마을로 들어서자 작품속의 물레방앗간자리에 표지석이 있고 물레 방앗간이 있었다.

 

물레방앗간의 초가지붕에 해바라기가 높이서서 몰려든 인파를 내려다 본다. 

 

그 한켠에 작품의 내용이 씌어진 표지석상에서 아내의 기념촬영을 하였다. 

 

마을 입구에 튼실히 자란 수수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시차를 두고 심은 메밀이 만개한 곳에는 사진들을 찍느라 온통 인파에 시달리고 있었다.

 

넓은 들녁부터 산 중턱까지 온통 메밀꽃이다.

 

인파없는 푸른들판의 메밀꽃밭을 그림으로 담기가 정말 힘들었다.

 

메밀꽃밭 안까지 깊숙히 휠체어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이동로를 만들어 놓아 정말 아내와 구석구석 다닐수 있어 얼마나 고마왔는지...

 

 

메밀꽃이 만개한 들녁 한복판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인적없는 한가로운 장면을 순간 포착할 수 있었다. 

 

메밀밭 한가운데 DJ박스를 만들어 놓고 사연과 신청곡을 접수받아 즉석에서 틀어준다.

 

드넓은 들판으로 울려퍼지는 나의 신청곡(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사연과 함께 울려 퍼지자

아내가 사진포즈를 잡다가 활짝웃는다.

 

광활한 메밀꽃 들력에서 아내와 기념 촬영을 하였다. 

 

그저 즐거워하는 아내...

그래서 나도 즐겁다.

 

아내가 있어 나는 이곳에 올 수 있었으나 

아내는 이곳까지 데려와 준 내가 오히려 고맙단다.

 

순수한 아내 미소같이  하얗게 만개한 메밀꽃

 

효석문학관을 오르는 산언덕길에서

 

산길을 오르고 오르다 지쳐 효석 문학비 앞에서 잠깐 숨을 돌리며...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힘들어하는 아내가 안스러워 나는 문학관을 코앞에 두고 하산해야 했다.

아내는 끝까지 오르겠다는 걸 내가 만류하였다.   

 

문학관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효석생가를 가르키는 이정표를 지나

 

그가 살았던 생가에 도착했다.

 

작지만 봉평을 내려보는 산 중턱에 자리한 이효석의 생가

 

온기없는 부뚜막에 걸린 가마솥과 주인 떠난 작은 소반의 식기와 수저

 

간곳없는 늙은 소의 전설을 담고있는 외양간과 여물통

 

마당 한켠에 따로 서있는 칙간(화장실)

 

그 칙간에 어린시절 보았던 똥장군이 있다.

옛날엔 똥장군에 인분을 퍼담아 지게에 지고 밭에다 인분을 뿌리고 거름을 주었다.

정말 오랫만에 본다 

 

효석생가에서 내려다 본 마을

 

길섶엔 콩이 튼실히 자라고, 그너머로 메일밭이 융단같이 곱게 자라고 있다.

 

이젠 시골 농가도 현대화로 도시보다 더 살기 좋을 것 같다.

 

 

마을 어귀에는 맑고 투명한 냇물이 흐르고,

할 수만 있다면 이 물에 발을 담구고 싶었다.

 

염려했던 비는 오지 않았다.

산허리에 맴돌던 구름은 햇살을 가려 얼마니 감사했는지....

 

마을에 시내로 흐르던 물은 강이 되어 맑게 흐른다.

 

그 옛날 효석이 냇가의 외나무다리를 건너 40리 길을 등하교했을 이곳을

지금은 나이든 이들은 추억으로,

어린이들은 과거 속으로의 여행을 하는 길이 되어 건넌다  

 

나도 마음만 함께하며 사진으로 담아본다.

 

작지않은 거리를 아내는 나의 휠체어를 밀며 돌았다.

 

아내와 나는 이곳에서 만들었다는

 

메밀묵과 메밀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메밀막국수로 마무리하여 여행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