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이유

제29회 현대시선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서울의푸른하늘 2013. 11. 4. 14:50

글을 쓴다고 껍적거린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부끄러워야 할 나이가 아님에도,
부끄럽게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11월2일 제29회 현대시선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정식으로 문단에 입문한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깊어가는 가을 날....

인생을 돌아 볼 나이에 신인이라는 말이
웬지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느낌이다.
삶에 있어서 도전은 숭고하고 가치있는 일이며
아름다운 것은 틀림이 없는데
오늘 밤 삶의 무게가 더욱 느껴진다.

 

 

 

 

 

당선 소감

 

 

 

열서너 살 때 일로 기억된다.

어디서 누구로부터 얻었는지 모를 표지조차 떨어져 걸레가 되어버린 낡은 조흔파 선생님의 얄개전을 밤새워 읽다가 새벽 3시면 출근하시는 아버지께 들키고 말았다.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학교에 가야 할 녀석이 어쩌자고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느냐며, 눈물이 빠지도록 야단을 맞은 것이다.

등교는 형들이나 하는 것이지, 언제 등교할지도 분명치 않은 내가 왜 꾸지람을 들어야 했는지 이해를 못하여 마냥 서러웠다.

한 달이면 열흘도 채 등교를 못 했던 그 시절- 첫돌 때에 소아마비를 앓아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여 어머니 등에 업히는 날이 학교 가는 날이요, 형들이 휠체어를 밀어주는 날이 내가 등교하는 유일한 날이었다. 이 때문에 오로지 집안에 박혀 살아야 했던 내게 책을 읽는 것은 유일한 소일거리였거늘.

지시하면 따르고, 이르면 행하여야 하는 엄한 부모 앞에서 숨도 크게 쉴 수 없던 그 시절이 우리의 교육이었고, 부모의 자식 사랑이었다.

그 날 저녁,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는 지게꾼을 앞세워 책을 한 아름 사 오셨다.

휘문출판사의세계아동문학상전집세계위인전. 수백 권의 책을 사 오신 아버지에 의해 내 인생이 결정되어 버렸다.

언제부터 인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이 되었다.

오로지 그것이 내가 할 일 전부였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 세상 경험 없이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없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방자한 일인가.

뜻을 이루지 못한 세상을 과감히 버리려 했던 스무 살의 순진한 용기로 습작했던 수백 편의 시와 수천 장의 원고지를 불살라 버린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글을 쓴다고 껍적거린지 40년여.

이제야 내 눈에 비친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 가슴속 생각의 흐름을 글에 맡길 수 있는 눈이 비로소 아주 조금씩 보이려 한다.

평생을 걸어보지 못한 부끄러운 걸음마를 이제야 조심스럽게 시작하려 한다.

넘어져 무릎이 까이고, 생채기 가시지 않는 날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끄러운 걸음마를 한발 한발 띠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본다.

그 무엇 하나 가르쳐 주는 이 없고, 알려주는 이 없어, 가슴치고 울분을 삭이면서 스스로 터득하여 온 짧지 않은 세월을 되돌아본다.

졸작으로 날밤을 새우고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가식의 밝은 미소를 간직했던 날들.

의연을 가장한 내면의 몸부림에 깊은 멍으로 호흡조차 감당치 못한 채 세상을 만났던 숱한 날들에 의해 깎고 다듬은 틀이 아직도 울퉁불퉁하고 서툴러 모자람 투성이라 손 내밀기 부끄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이 모두가 인생의 장신구라면 자랑할 일을 못되지만, 기어이 감출 일 또한 아닌가.

드러내지 않고 걸어온 자신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표하며 스스로 자위를 하니, 창밖에 일그러진 달이 환하게 달무리 속에서 날 보고 함께 웃잔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 없는 것은 나의 오만과 편견으로 편협 된 시각을 고집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첸 카이거감독의 영화 위의 人生처럼 일천 번째 현이 끊어지는 그 날이 오면 눈을 뜰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시각장애노인의 희망처럼, 내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慧眼을 갖게 되는 그 날이 오는 날이야말로 내 인생을 완성하는 날이 아닐까…….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마음으로 27년을 하루같이 나의 손과 발이 되어 묵묵히 내 옆을 지켜온 아내와 심사를 맡아 주시고 졸작을 어여삐 보아주신 세 분의 김영미 선생님, 박호영 선생님, 그리고 볼품없는 졸작에 용기를 주신 윤기영 선생님께 마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3912일 새벽에.